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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묻은 러시아 땅.. 숨쉬기도 싫었다 " <사할린 까레이스키를 아시나요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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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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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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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2일, 이역만리에 두고 온 아들, 딸들을 보기 위해 대창양로원의 사할린 영주귀국동포 26명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늘도 막 시작한 장마구름을 걷어내며 축하했다. 짧게는 2년, 길게는 6년 만에 만나는 피붙이의 모습을 떠올리느라 모두가 처연한 모습이었다.
약 3시간을 비행한 후 유즈노사할린 공항에 도착하자 목을 빼며 기다리던 사람들이 저마다 '아버지, 어머니'를 울음으로 토해내며 방문단을 맞이한다. 아비와 헤어지고 자식과 함께하지 못한 기막힌 사연들, 어미를 그리고 자식을 그리던 서러움을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토해내 주변을 숙연케했다.
하지만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대륙으로 쫒겨갔던 이들의 가족은 보이지 않는다. 로스토프나 하바로스크는 아직도 여기서 멀기만 하다.
대창양로원에 입소돼 있던 영주귀국 동포들은 '고향방문단'의 이름으로 7월 20일까지 28일간의 사할린 체류를 시작했다. 이들의 짧은 여정에는 저마다 소설 같은 사연과 전설 같은 한이 뚝뚝 묻어나 마치 색 바랜 등사영화를 보는듯하다.
남편·자식 4명·손자까지 먼저 보낸 백남순 할머니
일제가 대동아공영권의 미명 아래 제국주의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던 1941년 중엽, 백남순(83) 할머니는 강제징용대상이던 오빠를 빼내기 위해 사할린에 벌써 가 있던 북한출신 신만익(1983년 58세로 사망)과 사진결혼을 했다.
백 할머니는 17세 꽃다운 나이에 먼 이국땅을 떠나야 했지만 집안의 기둥이었던 오빠를 대신해(일제는 가족 중 한사람이 징용되면 나머진 면제했다) 당시로서는 극심한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사할린행을 감수했다.
말 그대로 죽을 고생 끝에 조국이 광복을 맞았지만, 백 할머니는 두 번 다시 아버지, 어머니를 볼 수 없었다. 자신의 청춘으로 지키고자 했던 오빠의 안위도 알 수 없었다. 러시아의 귀국통제로 인해 무려 50여년 동안의 이방인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조선인에서 일본인으로, 다시 무국적자에서 러시아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차별과 설움은 살을 도려내고 골수에 박힐 정도의 아픔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주요감시대상자로 분류되고 스탈린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정책의 칼바람 속에서 백 할머니 일가는 시베리아 대륙의 깊은 곳, '로스토프'로 추방됐다.
언젠가는 조국에 돌아갈 수 있으리라 서로를 얼싸안고 치열한 삶을 버텼으나 국적 없이 떠도는 민초들의 처지는 바람 앞의 촛불과 다름없었다. 뒤에서야 러시아는 동화정책을 펼쳐 러시아공민증을 동포들에게 발급했다.
불행의 끝은 어디였을까. 남편이던 신만익은 간암으로 사망하고 4명의 아들을 차례로 시베리아 차가운 땅속에 묻어야만 했다. 몸서리 처지는 불행의 아픈 기억을 막내딸과의 동거로 애써 씻어나갈 무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마저 사망하자 백 할머니는 자신에 처지에 절규하며 한국으로 영주귀국 했다.
로스토프 외곽의 한인묘지, 아들들과 손자의 묘를 찾은 백 할머니는 지난날의 아픔이 다시 떠올라 발걸음을 옮겨놓지 못했다
"남편과 4명의 자식들, 그리고 손자까지 여기 묻었어. 러시아땅은 보기도 싫었고, 숨 쉬는 것도 싫었어".
할머니의 독백이 흘러나왔다. 묘비를 쓰다듬던 할머니의 손길이 차츰 떨려왔다. 백 할머니는 그렇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로스토프에서의 마른 통곡은 그렇게 시작됐다.
로스토프의 통곡을 뒤로 한채 다시 한국으로
모두가 80세를 훌쩍 넘어버린 사할린 영주귀국동포들의 고향방문단들의 28일간 여정은 그들의 그리움과 외로움에 비해 너무나 짧고도 아쉬움이 진하다. 그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이번 귀향이 마지막이 될 것이란 두려움도 짙다. 이번에 담아둔 아들과 딸의 모습, 손자·손녀의 재롱을 잊지 않으려 자꾸만 흐려지는 의식을 다잡는다.
한국행 비행기의 탑승을 알리는 방송은 이들의 울음을 터뜨리는 신호가 됐다. 이들에겐 또 다른 이산이 지금부터 다시 시작된다. 체취를 담기위해 자꾸만 어루만지는 이,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마른 통곡을 뱉어내는 이, 아이들을 향해 연신 고개를 돌리며 하염없이 손을 흔드는 이들 모두에겐 다음의 방문을 자신하지 못한다.
지금의 눈망울과 지금의 울음소리를 가슴에 묻어야 한다. 떨어지지 않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비행기에 오른 노인들은 짧은 재회를 담아둔 사진 한 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끝내 깊은 적막으로 빠져들었다. 사할린으로의 짧은 방문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2007-07-26 12:26
ⓒ 2007 OhmyNews (정창오 기자)
사진 : 교포들이 한 많은 생을 마감했거나 청춘을 묻은 사할린 나이뿌찌 탄광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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