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70 특별기획:끝나지 않은 귀환, 사할린의 한인들-3] 이산의 연속 809
관리자     2016-02-04


[끝나지 않은 귀환, 사할린의 한인들·3] 이산의 연속

경인일보 창간 70 특별기획
귀향, 그리움도 따라왔다

정운·김환기·강기정 기자
발행일 2015-10-13


<인천시 연수구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10년째 생활하고 있는 강정순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사할린에서 겪었던 이산의 기억을 회고하고 있다.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강제 징용된 가장 찾아 온 가족
규슈로 3천여명 전출 ‘또 생이별’
평생 꿈꾼 고국 영주귀국 하니…
이번엔 두고 온 자식 ‘눈에 아른’


사할린 한인들의 삶은 ‘이산(離散)’의 연속이었다. 처음은 일제 강점기 사할린으로 강제로 징용을 당하면서였다. 이별의 슬픔을 겪던 한인들은 이후 가족들이 사할린으로 와 함께 살게 됐지만, 1944년 일본은 사할린의 한인 노동자 3천여 명을 일본 규슈지역으로 전출시켰다.

이때 전출당한 한인들의 가족들은 사할린에 남아 또 한번의 생이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1990년 이후 영주귀국을 했지만, 역시 자녀들과 헤어져야 했다. 영주귀국 대상자가 1945년 8월15일 이전 출생자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강정순(84) 할머니의 삶에는 사할린 한인들이 겪었던 이산가족의 아픔이 배어 있다. 그는 전남 순천에 살다가 1930년대 후반 아버지가 강제징용을 당하면서 가족과 떨어져야 했다.

1942년 모친과 함께 사할린으로 가 아버지와 함께하게 됐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1944년 일본이 강할머니의 부친을 일본 규슈로 보냈기 때문이다. 강할머니는 이후 부친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강 할머니는 “사진 한장 없어 아버지를 찾지도 못했고, 1991년에서야 그 이전에 돌아가셨다는 것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홀로 우리의 생계를 책임지신 어머니는 항상 고국에서 살고 싶어 했지만, 사할린으로 이주한 뒤 한 번도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1982년에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는 2005년 세 번째로 가족들과 떨어져야 했다. 강 할머니가 영주 귀국을 하며 자녀들과 헤어진 것이다. 이 때문에 자녀들이 당시 영주 귀국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의 침대 머리맡 근처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가족들의 사진이 10여 장 걸려 있었다.

그는 “삶의 마지막을 고국에서 보내고 싶어서 영주귀국을 결심했지만, 자식들과 손주들이 보고 싶어 괴롭다”고 말했다.

강 할머니의 경우처럼 영주귀국한 대부분의 사할린 한인들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이달 초 안산 고향마을에서 만난 장일삼(83) 할아버지는 지난 8월 3년여 만에 사할린에 있는 아들·딸을 보러 다녀왔다고 했다. 일본 정부에서 지원하는 ‘사할린 동포 귀국자 역방문 사업’을 통해서다.

매년 사할린에서 자녀들과 ‘휴가’를 즐기는 이웃도 있지만, 비행기 삯 등을 부담하기가 여의치 않은 장 할아버지는 수시로 자녀·손자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래곤 한다.

/김환기·정운·강기정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