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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명 : 러시아연방 사할린주
(러시아 연방 동부, 일본 훗카이도 북쪽 위치, 오호츠크해와 동해에 둘러쌓임)
수도 : 유즈노사할린스크
인구 : 673,100명(러시아인 80%, 우크라이나인 6%. 한국인 5% *2005년)
면적 : 7만 8000㎢ (남북길이 948km, 최대너비 160km, 최소너비 26km)
자원 : 천연가스, 석탄, 목재, 수산업
기후 : 냉온대 기후에 속함. 여름에는 몬순의 영향을 받아 약간 습윤하고, 겨울에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기온이 낮음. (하절기 15℃, 동절기 -20℃)


일제 강점기 “국가총동원령”에 의해 약 15만 명의 동포들이 사할린으로 강제징용되어 종전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계속 사할린에 거주하고 있는 4만 3천명의 한인을 사할린동포라 한다.

사할린 한인의 90% 정도가 남한 지역 출신이며 그 중 경상도 출신이 거의 70% 이상을 차지하는데 일본정부는 종전 후 이들을 그대로 사할린에 유기한 채 자국민만을 귀환시켰고 사할린의 한인들을 전후처리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된 채 소련의 강제억류 정책에 의해 끝내는 조국으로 귀환하지 못하였다.


1989년, 한·일 정부의 합의에 따라 한·일적십자사 간의 「재사할린 한국인 지원 공동사업체」결성,
 4만 3천 여명의 사할린 잔류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 실시 (모국방문, 영주귀국 등)
1994년, 한·일 양국정부, 사할린한인을 위한 시범사업 실시, 사할린동포 영주귀국자를 위한 요양원 1개동
 및 아파트 500호 건립 합의
1998년, 시설공사 착공(경기도 안산시 500호 아파트, 인천시 연수구 연수3동 요양원)
1999년 3월 2일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 개관
2011년 12월 현재 4,002명 영주귀국 (사할린동포복지회관 등 20개 시설 거주)


영주 귀국한 사할린동포 1세대 (1945년 8월 15일 이전 사할린거주자) 중 질병이나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노후 생활안정과 복지증진


(사할린 생활에 대한 어르신들의 인터뷰를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1939년 -45년, 일본인들이 모집, 관알선,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이란 곳에 일을 하러 가야 한다고 하더군. 동네 구장이 모집을 하러 나녔는데 집집마다 한사람씩은 다 가야하기 때문에 아버지 대신 간 사람도 있고, 형 대신 간 사람도 있고... 모두들 그렇게 사할린으로 가게 되었어.
그때 강제징용 간 사람들의 나이가 18-20세 정도 되었던 것 같다오..




사할린섬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그곳에서 탄광일이나 토목공사 등의 일을 했다오. 탄광(내현, 백포, 돌린스키, 샤코르스키 등)에서 석탄을 캐고, 비행장이나 도로를 닦는 일, 종이공장에서 종이 만드는 일들을 했어. 그밖에도 일본인들이 시키는 일들을 다 했지.
하루에 10시간 이상 일을 하고도 월급을 받지 못했어. 일본인들은 월급을 자신들이 관리한다며 통장으로 넣어준다고도 하고, 한국으로 보내준다고도 했지만 다 거짓말이었다오. 1945년 해방이 되고 우리는 당연히 한국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을 했어. 하지만 일본은 우리를 한국으로 보내주지 않았어. 말로는 일본인들을 다 일본으로 보낸 후에 우리도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했지만, 우리만 그대로 남겨두고 다들 일본으로 돌아가 버렸지.
그 후 러시아인들이 들어오면서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 길이 닫혀버리게 되었다오.



당연히 보고 싶었지. 그걸 어찌 말로 다 하겠나.
고향에 두고 온 부모, 형제들도 보고 싶고, 혼인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아내와 아이도 보고 싶었고...
사할린으로 들어와 일을 하다 아내와 아이들을 사할린으로 초청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에 사할린으로 데려왔지만, 문이 닫혀 버릴지 누가 알았겠나...
고향땅 다시 밟기 위해 걸린 시간이 60년이라니, 참 오래도 기다렸네...
내가 사할린에 있는 동안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가볼 수도 없었어. 나라가 힘이 없던 탓에 씻지 못할 불효를 저지르고야 말았지...



사할린은 동삼(겨울)에 아이들 키 넘게 만큼 눈이 내린다오. 얼마나 추운지 몰라요. 처음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서 많이 죽었어. 고국 떠난 허전한 마음을 술로 달랬거든. 그 독한 보드카를 마시고 추운 곳에서 잠을 자니 어떻겠소? 얼어죽는 사람들이 많았지.
그런 곳에서 생활하다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조국에 오니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지. 무엇보다 날이 따뜻한 것이 얼마나 좋은지...
하지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사할린에 있는 자식들이 보고 싶다는 것이오. 아이들이 잘 살고 있는지 혹여 무슨 일은 없는지... 항상 생각하게 되더군.
그것 빼고는 일없어...(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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